우리는 왜 영화를 사랑할까. 영화는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잠시나마 도피처가 될 수 있고, 오랜 시간 간절히 바랐던, 이루지 못한 나의 버킷리스트가 될 수도 있다. 또 영화를 통해 평생을 살아도 만나지 못할 수많은 타인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는 망원경이 되어주기도 한다. 수많은 각자의 이유가 존재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는 영화를 통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볼 수 있기에 영화를 사랑하는 게 아닐까 싶다. 만드는 이뿐만 아니라, 보는 이 역시 영화를 통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 나와 닮아 있는 주인공, 언젠가 나도 겪어보았던 에피소드, 너무나도 공감되는 영화 속 메시지.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영화 속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마주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누군가와 그 경험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게 되는 것이다.
그저 어제 본 영화에 관해 이야기를 꺼낼 때만 해도 우리는 각자의 이야기를 꺼내본다. 너무나도 좋았던 그 장면은 내가 너무나도 바라는 삶의 한 장면, 혹은 가장 그리워하는 추억의 한 장면일 것이다. 또 보는 내내 불편했던 그 씬은 긴 시간 쌓아왔던 나의 가치관과 철학을 단번에 깨부수는 씬, 혹은 다시는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의 일부일 수도 있다. 우연히 만난 영화 한 편에서 삶의 일부를 발견하는 것, 우리는 그렇게 영화를 통해 각자의 이야기를 꺼내게 된다.
과연 규씨네 두 번째 인디살롱, 이번 영화에서는 또 어떤 ‘우리의 이야기’를 꺼내볼 수 있을까?

이 시대 청춘의 아픈 구석을 이야기하다, <정직한 사람들>

인간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사회로 나아가는 순간까지도 늘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인생의 가장 큰 숙제를 가진 채 살아간다. 피해 갈 수 없는 새 학기 자기소개 시간, 아주 간절하게 써내려 가는 입시 또는 취업을 위한 자소서, 심지어 죽어서까지도 자신의 삶을 영원히 새기기 위한 묘비명을 준비하기도 한다. 끝이 없는 ‘자기소개’의 굴레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나’를 정의해 나간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얼마나 정직하게 ‘나’를 정의할 수 있을까? 이 질문 앞에서 우뚝 멈춰버린 한 여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보윤은 합격률 99%를 보장하는 자소서 대필가다. 고객 만족도는 무려 100%, 그녀의 손길을 원하는 고객이 꽤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공무원 시험 준비와 마트 알바로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가는 이 시대의 불쌍한 청춘. 남들은 잘만 붙여주면서 보윤은 왜 제자리일까. 그녀 역시도 늘 의문이었다. 그런데 왜 항상 힘든 일은 엎친 데다가 덮쳐서 오는지… 자꾸만 떨어지는 공무원 시험에 방황할 틈도 없이, 고객의 컴플레인부터 마트에서는 불미스러운 일까지 벌어지고 만다. 자꾸만 벼랑 끝으로 몰아세워지는 이 기분. 그녀에게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남들은 내가 만들어준 ‘정직’하지 못한 자소서로 취업에 돈도 버는데, 나는 왜 과감히 나아가질 못하는 걸까. 도대체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들과 무엇이 다른가. 그녀의 불안과 좌절은 커져만 간다.

그렇다면 보윤의 자소서로 ‘정직’하지 못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좀 나을까? 그들의 삶이라고 해서 더 낫고 훌륭한 삶은 아니었다. 돈, 사랑 등 또 다른 각자의 문제들이 존재했고, 각자의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는 그 과정에서 그들은 계속 ‘정직’이라는 단어 앞에서 망설여야 했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불쌍한 청춘이었고, 매일 같이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끝없는 고민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정직은 가장 훌륭한 미덕이다.’ 지대하신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그랬다. 정말 ‘정직’이 인간의 가장 훌륭한 미덕인 걸까. 도대체 그 훌륭한 미덕이 우리 삶에 어떤 큰 가치를 안겨줄 수 있는 걸까. 나만 빼고 다 잘만 돌아가는 것 같은 이 세상, 이 사회에서 우리는 왜 ‘정직’하게 살아야 하는 걸까?
우리의 삶도 늘 역설적이고 아이러니하게 흘러간다.
정직하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 <정직한 사람들>. 아이러니하고 역설적인 제목이 그렇지 않아도 구경할 게 많은 알맹이를 더 매력적으로 포장해 놓았다. 김문경 감독이 좋아하는 포장 방식이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여운을 품고 제목을 한 번 더 보게 되는 그런 포장 방식. 전작인 단편 <보편적 사람들> 역시 제목과는 다르게 전혀 보편적이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이다. 어쩌면 김문경 감독의 이런 아이러니하고 역설적인 포장 방식이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닮아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늘 성실하지 못해도 늘 성실하다고 얘기해야 면접에 붙을 수 있다. 간절하지 않아도 간절하다고 해야 취업에 성공할 수 있다. 하기 싫은 업무도 기꺼이 해내겠다고 해야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거짓된 삶이라고 하지 않는다. 적당한 상황에 맞게 나를 포장하는 것, 우리는 늘 포장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포장지 안에 조금 더 솔직한 ‘내’가 있는 것뿐이다. 무엇보다 우리의 삶은 늘 계획대로,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늘 정해진 제목처럼만 살 수 없는 우리의 아이러니한 삶, <정직한 사람들>은 이런 우리의 삶을 가장 정직하게 다룬 작품이 아닐까.


영화처럼 걷고 여행처럼 찍는 삶
늘 마음 같지 않고, 계획대로 흐르지 않는 ‘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각자만의 방식이 필요하다. 온갖 풍파와 고난에도 기죽지 않고 삶을 즐길 수 있는 방식. 아마 모두 개인의 성향과 취향, 가치관에 따라 스스로에게 맞는 방법들이 존재할 것이다. 김문경 감독에게는 그것이 바로 영화, 그리고 여행이었다. 어떤 특별하고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다가 영화와 여행에 빠지게 되었고, 그 이후로 진심을 다해 사랑하는 것뿐이다. 그냥 이제는 영화와 여행이 ‘삶’과는 떼어 놓을 수 없는 일부가 되어버린 것이다. 김문경 감독의 저서 <영화처럼 걷고 여행처럼 찍다>를 펼치면, 삶을 즐기는 김문경 감독만의 ‘솔직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그 이야기들은 보윤을 비롯한 수많은 ‘정직한 사람들’에게 때아닌 위로를 주기도 한다.

진정한 ‘우리의 이야기’가 담긴 ‘인디살롱’
<정직한 사람들>로 시작된 밤은 어느새 ‘우리의 이야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영화 속에서 바라본 각자의 이야기를 모으다보니, ‘우리의 이야기’가 된 것이다. 2025년 7월 26일, 오직 그날 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하고만 만들 수 있는 ‘우리의 이야기’. ‘우리’라는 단어의 새로운 가치를 깨닫게 되는 밤이었다. 이런 밤을 보낼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그 공간이 ‘규씨네’이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영화를 함께 관람하는 모임이야 수도 없이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호스트의 기획 아래, 영화를 보기 위해 만들어진 장소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영화를 시작으로 수많은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 즉, 낯선 이들이 영화를 통해 온전한 ‘우리’가 되는 경험은 흔치 않다.



특히 규씨네의 ‘인디살롱’이 가진 힘은 더욱 남다르다. ‘늘 보는 사람이지만, 오늘만큼은 나도 만드는 사람이 되어서 자리를 즐겼다.’ 긴 밤을 함께 했던 누군가의 담백한 소감이었다. 이처럼 만드는 이와 보는 이의 경계를 없애고, 온전히 그 순간을 누릴 수 있게 만든다. 어쩌면 영화를 가장 ‘정직하게’ 즐기는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게 바로 규씨네의 아이덴티티 ‘인디살롱’의 매력이다. 다음 ‘인디살롱’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들을 함께 나눌 수 있을지 기대가 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