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사랑하기로 결심한 후로는 종종 시간이 맞으면 영화제나 영화와 관련된 작은 행사들에 참여하곤 한다. 그런 행사들을 찾아다니는 이유로는 세상에 새롭게 태어난 영화들을 맞이하거나 어딘가 숨어있다 나타난 듯한 매력적인 독립영화를 발견하는 즐거움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시네필의 필수 덕목이라고 할 수 있는 GV와 같은 관객 참여형 프로그램들이 열리기 때문 아닐까. 가끔 영화가 참 외로운 취미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영화가 끝나면 생각이 참 많아지는 관객과 할 말이 끝나면 매정히 침묵으로 돌아가는 영화. 그 관계에서 오는 외로움을 채워주는 것이 바로 GV 일 것이다. 또 영화라는 하나의 문화에 일조하는 구성원이 된 듯한 기분으로 나의 뿌듯함도 채워준다.
나 역시도 그런 자리들을 즐기는 편이다. 물론 질문의 기회들은 고사한 채 박수만 치며 자리를 지킬뿐이다. 우선 사회자가 신호를 주면 십수 명과 경쟁하며 손을 들고 있을 용기가 없다. 그중에 나를 시켜줄 리가 없다는 생각도 한몫한다. 또 정해진 GV가 끝날 때까지 가장 하고 싶은 질문을 결정하지 못하는 숙명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는 길, 머릿속에 질문들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그 순간은 참 허탈하다.
이 글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고 있을 당신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너무 낙담하지는 마시길. 바로 이곳, ‘규씨네’에는 우리처럼 비슷한 마음을 지닌 시네필들을 위한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다.
독립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공간, 인디살롱을 소개한다.

규씨네의 첫 번째 정규 프로그램 ‘인디살롱’은 독립 영화감독 및 배우를 초청해 함께 영화를 보고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흔한 GV처럼 넓은 영화관에서 수십 명의 관객과 감독이 대면하는 것이 아니라, 감독을 포함한 열몇 명의 사람들이 아늑한 공간에서 함께 ‘진정한 대화’의 시간을 갖는 것. 이것이 바로 ‘인디살롱’이다. 직업, 관심사, 선호도 등을 떠나서 영화를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 하나로 모인 이들의 대화는 그 어떤 GV보다도 진중하고 다정하다.
과연 규씨네 ‘인디 살롱’의 시작에는 어떤 작품이 함께 했을까?

고개를 들면 보이는 희망, <울산의 별>

처음 간 모임에서 영화 취향이 맞는 사람을 만났을 때처럼 낯선 사람들과의 대화가 친근하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는 반면, 가장 가까운 이들과의 대화에서 무너뜨릴 수 없는 벽을 마주하는 순간도 있다. 가족, 동료, 그리고 스스로와의 대화에서도 예외는 없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에는 후자의 순간들이 더 많을 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각자 그 벽을 앞에 두고 되돌아가기도 하고, 벽에 대고 간절함을 소리치기도 한다.
여기, 그 높은 벽을 피투성이 맨손으로 악착같이 기어오르는 한 여자가 있다.
사고로 남편을 잃고 조선소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윤화는 어느 날 갑자기 해고 통지를 받는다. 어떻게 보면 처음에는 오갈 곳 없어 시작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20년을 넘게 자리하며 이제는 그녀 인생의 한 조각이 되어버린 조선소. 한순간에 그녀는 인생의 한 조각을 잃은 것이다. 한 조각을 잃고 나니, 그동안 겨우겨우 살아오느라 잠시 외면했던 나머지 조각들이 위태롭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비트 코인으로 전 재산을 날린 아들, 엄마 속도 모른 채 서울로 보내달라고 조르는 딸, 호시탐탐 땅을 노리는 친척들. 거세게 흔들리는 그녀 인생의 파동을 따라 우리도 잔잔히 요동친다.

그녀의 인생은 대체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지금껏 그녀는 무엇을 보고 달려온 것일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오늘의 영화는 정기혁 감독의 <울산의 별>이다.
<울산의 별>은 인생의 큰 파도를 맞닥뜨린 윤화가 고군분투하며 발버둥 치는 삶의 날카로운 이야기를 담아낸 영화다. 점점 거칠고 외로워지는 윤화의 행보에 보는 내내 허탈하고 쓸쓸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의 삶의 이유와 목적이 결국엔 오롯이 가족을, 회사를 위한 헌신이었음을 느낄 때마다 우리도 모르게 영화 속에서 희망을 찾게 된다.
정기혁 감독이 이야기하는 ‘희망’과 ‘연대’
크레딧이 올라간 후, <울산의 별>은 인디살롱을 찾아온 관객에게 쓸쓸함을 주기도 했고 희망을 안겨주기도 했다. 확실한 한 가지는 ‘그럼에도’ 살아가는 윤화의 모습에 모두가 각자의 시선으로 자신의 삶을 떠올리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다. 사실 감독에게 <울산의 별>은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만든 작품은 아니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윤화의 이야기가 말 한마디보다 강렬한 위로가 되었고, 또다시 살아갈 힘을 얻음으로써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 것이었다. 마치 보이지는 않지만 저 하늘 어딘가에 존재하는 별을 떠올리는 것과도 같다. <울산의 별>은 말 그대로 고개를 들면 보이는 희망이었던 것이다.
또 <울산의 별>은 ‘희망’ 그뿐만 아니라, 각자의 이유로 가여운 이들 간의 ‘끈끈함’을 보여준다. 아니다, ‘끈질김’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서로를 향한 무수한 오해와 갈등 속에 둘러싸여 있지만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서로의 아픔을 긁어대면서도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 속에서 끝끝내 함께 나아가는 그런 ‘끈질긴 연대’를 보여준다. 이들이 보여준 ‘끈질긴 연대’가 어쩌면, 각자도생으로 살아가기 급급한 요즘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삶의 방향 키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울산의 별>과 함께 깊어가는, ‘인디살롱의 밤’
<울산의 별>은 이미 작품 자체만으로도 관객들의 마음을 끌어당기기에 충분히 매력적이었지만, ‘인디살롱’이라는 프로젝트를 만나게 되며 또 하나의 새로운 시너지를 발휘하게 되었다. 대체 ‘인디살롱’의 어떤 부분이 이 독립영화를 더욱더 매력적이게 만들었을까?
아무래도 마이크로 시네마만의 매력을 아주 잘 살려주는 ‘규씨네’의 공간적 특성 한몫하는 것 같다. 스크린, 즉 영화와 관객의 거리가 가까워진 것만큼이나 감독과 관객의 거리도 가까워졌다. 한층 가까워진 거리감이 주는 그 친밀함은 ‘인디살롱’만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굳이 마이크를 주고받지 않아도, 멀리서 손을 들지 않아도 서로의 감정과 분위기를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사실 관객과 관객의 거리도 매우 가까워졌다. 물리적으로 따져보면 조금 더 영화를 보기 쾌적하고 넉넉하게, 무엇보다도 팔걸이를 공유하지 않아도 될 만큼 개인의 자리가 확보되어 있다. 그러나 딱 붙어있어도 영화를 보는 내내 의식도 않게 되는 영화관 옆자리와는 달리, 상영 공간에 들어와 자리에 앉을 때부터 영화가 끝난 후 함께 대화를 나누는 동안 본인도 모르게 친근해져 있는 옆 사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이 작은 영화관을 찾아왔을까, 과연 어떤 사람이길래 저런 질문을 생각해냈을까. 같은 문화를 향유하는 입장으로서 각자가 가진 생각과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어지는 욕구가 생기기 때문이다.



‘인디살롱’의 또 하나의 매력은 앞서 말한 ‘진정한 대화’가 상영 공간을 뛰어넘어 우리의 아주 개인적인 영역으로까지 여운을 남긴다는 것이다. 호스트께서는 그저 ‘뒤풀이’라고 써두었지만, 나는 그 ‘뒤풀이’가 단순히 모임이 끝난 후 모여 여흥을 즐기는 것에만 그치는 시간은 아니라고 느꼈다. 상영 공간에서 미처 나누지 못한 길고 비공식적인 감정과 개인적인 생각들, 그러한 것들의 공유가 만들어내는 또 다른 감정들이 어쩌면 그냥 흘려보냈을 영화 한 편을 쉽게 닿을 수 없는 한 사람의 마음 깊은 곳까지 파고들게 하기 때문이다. 또 사이사이 가볍게 주고받는 사적인 이야기들은 밤이 깊을 수록 대화의 즐거움을 가미시킨다.


영화에 대한 진중한 이야기, 더 나아가 인생에 대한 뜨거운 이야기를 나눈 후,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간만에 올려다 본 밤하늘에는 몇 개 안 되는 별들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다. 사실 별이라는 확신도 들지 않는다. 아주 멀리서 날아가는 비행기인가, 돌고 도는 인공위성인가. 그 정체가 무엇인지 이 땅을 밟은 채로는 끝내 알아낼 수 없겠지만, 우리에게 위로가 되어주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마치 <울산의 별>에서 마주한 희망들처럼 말이다.
인디살롱의 밤이 깊어가고 있다. 과연 또 어떤 빛나는 독립영화들이 이 끝없는 밤을 거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