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한 사람’을 전부 헤집어 보고 싶은 욕망을 느낀 적 있을 것이다. 유년 시절은 어땠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어떤 사람들을 만나왔는지. 그 사람의 삶과 인간관계, 그리고 취향까지도 궁금해진다. 결과적으로는 그것들을 통틀어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게 되었는가?’가 궁금한 것이다. 영화를 사랑하다 보면 이렇게 감독을 향한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을 경험하게 된다. 사랑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하나의 영화를 정말 인상 깊게 보게 되면 감독에 대한 호기심과 갈망을 느껴볼 수 있다. 이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노래가 마음에 들면 누가 불렀는지, 그림이 마음에 들면 누가 그렸는지 궁금해지는 것처럼, 영화도 1차원적인 영상물을 뛰어넘어 이를 만든 ‘감독’이라는 타인에 관해 관심이 생기게 된다. 그러면서 그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의 새로운 작품을 기다리고 있다. 타인을 알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강렬한 욕구가 영화를 통해서 가장 잘 드러나는 순간이 아닐까.

그 욕구와 니즈를 완벽하게 파악한 프로그램이 바로 여기 규씨네에 있다. 시네필의 간지러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규씨네, 그 두 번째 프로그램 ‘감독열전’을 소개한다. 감독열전은 한 명의 감독을 선정해, 한달간 집중조명하는 월간 작가주의 프로그램이다. 특정 주제를 정해 총 네 편의 작품을 큐레이팅하고 영화의 스타일과 세계관 등을 깊이있게 탐구한다. 규씨네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철학적이고 깊이 있는 프로그램 ‘감독열전’, 영광의 첫 주인공은 ‘스탠리 큐브릭’이다.
냉철한 시선을 지닌 완벽주의자, <스탠리 큐브릭>
“스탠리 큐브릭은 영화 역사상 타의 추종을 불허할 가장 위대한 감독이다.” – 크리스토퍼 놀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완벽한 미학을 추구한 완벽주의자. 영화에 대한 뛰어난 감각을 가진 예술가이자 늘 새로운 기법을 선보이는 테크니션으로서, 다양한 장르들을 개척해 나가며 영화계에 이름을 날린 ‘스탠리 큐브릭’. 크리스토퍼 놀란, 마틴 스콜세지, 스티븐 스필버그, 웨스 앤더슨 등 수많은 영화 감독에게 있어서 교과서로 존재하는 거장이다. 물론 이러한 명성을 얻을 만큼 경악스러운 완벽주의 성격 탓에 함께 작업하기가 어렵다는 악명을 남기기도 했다. 가고자 하는 방향성에 있어서, 그에게는 조금의 타협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작품들 역시 주인을 닮아 하나하나 완벽한 디테일과 독창성을 지녔다.
그의 신화가 끝난,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기 직전까지도 그는 계속해서 작품을 만들었고, 결국 이 세상에는 그의 이름으로 남겨진 수많은 걸작이 존재한다. 규씨네에서는 그중에서도 《영광의 길》, 《샤이닝》, 《시계태엽 오렌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이 네 가지 작품들을 큐레이팅하여 첫 ‘감독열전’을 진행했다. 과연 이 네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스탠리 큐브릭으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있을까?

사라져버린 인간성에 대하여 《영광의 길》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프랑스. 참호전으로 전쟁은 길어지고, 군인들은 점점 지쳐만 간다. 그런 와중에 총사령관 브롤라드는 전쟁에서 승리하고자 대대적인 진격을 계획하게 되고, 이를 미로 장군에게 승진을 빌미로 과감히 밀어붙인다. 그 진격 명령 중 하나인 독일군이 점령하고 있는 ‘개미고지 탈환 작전’이 바로 《영광의 길》의 시작이었다. 처음엔 그저 흔한 전쟁영화처럼 보이지만, 그 표면 아래에는 권력과 계급의 부조리를 숨겨둔 아주 회의적이고 비극적인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정복과 승리, 자본과 무력을 위한 국가의 욕망을 위해 다수의 국민이 희생되는 전쟁의 참혹함, 그 속에서도 또 다른 명예와 권력을 향한 인간의 욕망으로 무고한 인간들이 이용되고 희생된다. 책임과 죄책감, 그리고 인간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체 무엇을 위한 영광인가.

붕괴하는 인간의 심연 속으로… 《샤이닝》

겨울이 되면 폭설로 문을 닫는 오버룩 호텔, 잭은 호텔을 관리하는 조건으로 가족인 웬디, 대니와 함께 호텔에 몇 주간 묵게 된다.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고요함 속에서 그들은 평화로운 듯했으나, 점점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자꾸만 이상한 환각을 보는 대니와 분노를 조절치 못하는 잭. 그 사이에서 웬디는 초자연적이고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겪으며 혼돈에 빠지기 시작한다. 이제는 가족인 웬디와 대니를 위협하기까지 하는 잭. 그들은 도망쳐야만 한다. 내면의 잠재되어 있던 분노와 거친 감정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잭, 고립 속에서 숨 막히게 조여오는 공포에 피폐해져가는 웬디. 그들은 붕괴되고 있다.

우리는 과연 자유로운가, 《시계태엽 오렌지》

자신들의 쾌락과 유흥을 위해 폭력적이고 반사회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 알렉스 일당, 어쩌면 이 사회의 악이 아닐까 싶다. 여느 때처럼 폭력과 약탈로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던 그들, 결국 우두머리 알렉스가 경찰에 잡혔다. 알렉스는 교도소에서 나름 충실한 모범수로 생활하며 지겹도록 긴 징역살이를 이어간다. 그러다, ‘루도비코 요법’이라는 정부의 실험적 교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 ‘루도비코 요법’은 실험자가 폭력적인 충동이 들면 물리적 충격을 가함으로써 폭력적인 충동을 강제로 억제하는 치료 프로그램이다. 결국 2주의 고통 끝에 알렉스는 폭력적인 행동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더 어마무시한 고통과 삶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과연 그는 폭력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혹 그에게서 사라진 것이 폭력성이 아니라 ‘자유의지’는 아닐까?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거대한 우주, 그리고 지구라는 작은 별에 살아가던 태초의 유인원들은 어느 날 미지의 커다란 검은 물체를 접하게 된다. 훗날 ‘모노리스’라고 불리는 이 물체를 만난 유인원은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며 위대한 진화의 첫걸음을 뗀다. 그리고 수백만 년 후 5인류는 달에서 한 번 더 모노리스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모노리스의 힘으로 목성까지 나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 여정에는 특별한 승무원, 고성능 인공지능 HAL 9000이 함께하게 되었다. 그런데 목성과 가까워질수록 HAL 9000에게서 어딘가 미묘한 기류를 느껴지기 시작한다. 인류의 끝없는 진화의 순간들, 우리는 지금 어느 지점에 와있으며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인간이란 무엇인가?
스탠리 큐브릭은 커다란 무언가 속에 놓인 작은 인간의 이야기를 다양한 소재로 다루고 있다. 부조리한 권력과 인간성을 상실한 계급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무고한 군인의 이야기 《영광의 길》, 살아있는 악령 그 자체인 기이한 호텔과 고립 속에서 광기와 공포에 치닫는 한 가족의 이야기 《샤이닝》,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 인간마저 개조하려는 정부 속에서 자유의지를 잃어가는 소년범의 이야기 《시계태엽 오렌지》, 그리고 우주라는 거대한 세계 속에서 진화하고 나아가는 인류의 이야기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까지.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장대하고 강력한 시공간 속에서 아주 조금씩 꿈틀거리며 살아가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정말 우주먼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유독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를 보고 나면 더 그렇게 느껴진다. 스크린 속 완벽함과 거창함에 압도되었다가 현실로 돌아오면, 내가 아주 작고 보잘것없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 인간은 과연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결국 그는 우리에게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게 아닐까?

영화와 인간, 인간과 영화
영화에는 한 사람의 긴 세월, 짙은 향기, 묵혀둔 마음이 담겨있다. 다 모아놓고 보면 그것들이 ‘그 사람’이 되는 것이다. 물론 단 한 편으로는 그 사람에 대해 확신하고 단정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의 영화를 계속 찾아보게 되는 것이다. 또 어떤 향기가 배었을까. 어떤 마음을 감춰두고, 어떤 말들을 눌러 담았을까. 궁금해진다. 이렇게 한 사람을 향한 끝없는 물음 속에서 우리는 완벽한 타인에 대한 이해를 얻고, 더 많은 이야기와 가치들을 얻는다. 어떤 지점을 넘어서면, 더 나아가 인간의 존재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도 하게 될 것이다. 영화는 그 어떤 것보다도 ‘인간적인’ 취미가 아닐까 싶다.
